새벽 3시 알람이 울렸다. 어제 공용물품 정리하랴 하며, 사진정리하랴하다, 12시가 되어서야 잠에 들었었다. 고작 3시간을 잤다. 그런데 그 조차도 깊게 잠에 들지 못했다. 환경이 바뀌면 쉽게 잠에 들지 못하기도 하고, 너무 피곤해서 그랬을 것이다. 평소에도 잠에 잘 들지 못하기에 자고 일어났을 때 피곤함은 일상이다.
새벽4시. 우유니로 출발하기 위해 약속된 시간. 그러나 모이기로 한 장소에 단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여독으로 인해, 그리고 급격히 바뀐 환경으로 인해 다들 피곤함으로 컨디션 조절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정보다는 조금 늦은 출발을 했다. 우선 우유니로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다들 부족한 잠을 차에서 해결했다. 워낙 대중교통에서 잠을 자지 못하는 나는 창밖을 보며 오렌지 빛의 라파즈를 구경했다. 라파즈는 온통 주황불빛의 전구를 사용해 동네를 밝힌다. 그래서 밤에 야경을 보면 오렌지 빛의 반디불이들이 춤을 추는 것 같다. 새벽의 라파즈는 그 빛으로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동하는 동안 낯익은 풍경이 보여 지도를 보았다. Centro. 센트로 였다. 과거 배낭족시절 숙소를 잡고 걸어다니며 구경한 동네다. 어제까지의 라파즈는 낯선 동네였는데, 오늘의 라파즈는 익숙한 동네다. 뭔가 정겹고 반가웠다. 기억 저편에 감추어 두었던 볼리비아의 기억을 더듬어 가보았다. 사람들 많고 시끄러운 낮의 센트로는 정말 정신없고 긴장해야 하는 동네였는데, 그와 달리, 조용하고 고요한 새벽의 센트로는 차분하면서도 안정적인 느낌을 주었다. 오렌지빛의 조명처럼 따뜻해졌다.
기억을 조금씩 되새겨보며 추억을해보려는 찰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유니로 가기 위한 버스로 갈아탔다. 이 버스는 남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층버스다. 보통은 1층과 2층의 좌석과 화장실이 있는 버스지만, 이번에 우리가 탑승한 버스는 2층에만 좌석이 있었다. 오랜만에 2층버스를 타니 유럽과 남미 여행을 하던 시간들도 생각이나 그 때의 소중했던 기억들을 떠올려 보았다.
역시다 단원들은 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잠에 들었다. 부러운 친구들이다. 물론 많은 단원들이 고산병으로 인해 두통이 생겨 타이레놀을 먹었다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잠을 잘잔다. 앞으로 있을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멜라토닌을 먹어 잠을 보충하려 했던 나는 오히려 정신이 더 말짱해졌다. 속상하다.
얼마쯤 지났을까. 버스가 갑자기 정차를 했다. 톨게이트인가 하고 창밖을 보니 전혀 아니었다. 차량에 문제가 있나보다 생각했을때 드라이버가 누군가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장기간 이동이다보니 드라이버가 쉼이 필요했나 싶었다. 그런데 경찰 두명이 드라이버와 차량에 탑승했다. 체크포인트였다. 볼리비아 뿐 아니라 많은 나라들에게 중간중간 이렇게 체크포인트가 있어 특이사항이 없는지 확인하곤 한다. 중동국가의 경우 테러가 잦은 지역이다보니 위험물이 없나 확인하곤 한다. 그런데 볼리비아는 그런 특별한 이유가 있는 동네가 아닌데, 왜 경찰이 탑승했을까 궁금했다. 요즘 산타크루즈에서 시위가 있다곤 하지만, 여기는 거의 시위가없는 라파즈다.
경찰들은 이곳저곳 훑어보더니 특별한게 없는지 뭐라고 이야기 하곤 내렸다. 추측건데 아마 시비거리를 찾고 용돈벌이를 할 모양이였는데 마땅한게 없으니 그냥 돌아간 모양이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일행 중 몇몇 동생들은 경찰이 차량에 올라온 상황이 살짝 겁이나 자는 척 했다고 한다. 경험해보지 않은 상황에 당황했을 법하다. 그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겁이날 이유가 없는데, 겁이 난다고 하니 말이다. 내가 원채 이런것에 겁이, 걱정이 없는건가..
3시간쯤 지났을까 광부의 도시로 추정되는 오루로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우린 점심식사로 어제 만든 김밥을 먹었다. 여러 사람들이 만든 김밥이다보니 모양도 그 크기도 일정하지 않지만 소풍 나온 기분이였다.
식사를 하며 다들 이야기들을 할법도 한데, 단원들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지 않았다. 주된 주제가 고산병과 컨디션이다. 대화의 시작을 다들 ‘괜찮아요? 컨디션 어때요?’라고 물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다들 낯선 고산병을 맞이해 어찌해야 할바 몰라하는 것 같다. 나는 이전의 경험때문인지, 체질이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금새 적응해 문제가 없었다. 그저 고산이다보니 살짝 숨이 차는 것 외엔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
다들 고산병으로 고생하니 걱정이다. 몸살 기운, 두통, 구토, 코피, 매스꺼움 등 증상도 다양하다. 다들 괜찮아져야 할텐데..시간이 해결해 줄것이지만 걱정이 된다. 그나저나 나는 좀 잠을 잘 자면 좋겠는데..
그러던 와중에 여행 가이드가 코카잎을 내밀었다. 고산지역이 익숙치 않아하는 동양인들의 힘겨워 하는 모습을 본것이다. 코카잎은 코카인의 재료다. 그러나 그것은 돈 많고 탐욕 많은 사람들의 고약한 뒷이야기일뿐, 고산지역 사람들에겐 고지대의 두통을 달래주는 찻잎일뿐이다. 다들 코카티(Tea)라고 하니, 마약성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시길 꺼려했다. 가이드와 선교사님들이 코카인을 만들려면 정말 많은 코카잎이 필요하고 이정도 소량으론 그 효과를 보기 힘들다고 이야기 했다. 그재서야 단원들은 마음이 놓여 티를 마셨다. 티의 맛은 특별하지 않았다. 익숙한 맛이다. 녹차 같달까.
라파즈에서 우유니로 가는 길은 정말 황량하다. 수목한계선을 넘어선 고산지역에, 건조하다보니 작은 목초들 외엔 우거진 우림을 만날 수 없었다. 스텝지형의 초목도 없었다. 볼 수 있는 것은 황무지 그 자체. 중간중간 목초들을 뜯어먹는 라마, 야마, 알파카와 같은 동물들과 지평선만 보일 뿐이였다. 마을은 듬성듬성 떨어져 있어서. 풍경은 조금 다르지만, 몽골고원과 파미르 고원의 인간의 때가 덜 탄 이름모를 지역 풍경과 흡사했다.
이런 황무지 안에서 나는 비어짐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창조의 아름다움이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풍경이 낯설것이다. 나무도 없고, 건물들도 없고 하니 황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익숙한 것들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개발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하나도 없는 동네다. 그러나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연 그대로 남아있는 창조의 아름다움이다.
이런 자연 풍경속 비어짐의 아름다움을 보며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보았다. 배낭족의 삶 이후 나의 삶을 돌아보면 현실이라는 벽 앞에 빡빡한 삶을 살지 않았나 싶다. 왜 모든 것을 소유하려 했고, 벽 너머에 있는 여유를 잊고 살았을까. 여행할때 버렸던 삶의 고뇌와 미련들을 다시 주워와 이러고 있었을까. 배낭족때의 깨달음을 왜 행하지 못했을까. 왜 그것을 잊고 무너졌을까?!
내가 이용하는 통신사는 해외로밍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심카드를 구입하지 않았다. 심카드를 살 생각도 들었지만, 구입하지 않았다. 조금은 일상과 떨어져 자유롭고 싶었다. 보통 이렇게 장시간 이동중엔 지루함을 달래고자 문자를 하거나 유투브 영상을 보거나 하며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니 놓치고 있던 그리고 잊고있던 비움의 미학을 발견했다. 문자메시지와 유튜브로부터 자유롭다보니, 무언인가 속박에서 자유로워진 기분이다. 현실이란 삶에서 가진 고민들이 진짜 고민이였는지 돌아본다. 최근엔 가지고 싶은 것들이 많아 생각이 많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지 않은 달란트에 대해 집착하며 매몰되어 있었다.
그러나 자연을 보며 하나님은 내 마음을 돌아보게 하셨다. 인간의 개발로 도시가 만들어진 것 처럼 내 마음속에도 하나님이계셔야 할 자리에 온갓 것들을 세우고 있었다. 탐심, 시기심, 질투, 미움과 같은 그러한 죄성. 돈에대한 집착,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인정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그런 욕구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달란트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것에 집착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망각하고 홀로 외로워 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잠을 못이루는 것이였을까?
'나'라는 그림 안에 하나님께서 그려주신 부분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내가 그림으로 하나님이 그리신 부분을 어둠게 칠해버린 것은 아닐까. 회개하게 된다. 나의 마음에 세운 나만의 도시들을 버리고, 비워져 있는 창조의 자연으로 회복하게끔 말이다.
이렇게 길 위에서 다시금 깨닫는 것, 현대문명으로 인해 놓치고 있던, 함부로 지나치지 말아야 했던 자연의 풍경 그리고 비움의 미학. 그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 현실의 삶으로 돌아가서도 이것들을 기억해야 할 수 있을까.
우유니에 도착했다. 5년만에 다시 찾은 우유니. 그때와 다를바 없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볼리비아의 대표 관광지다. 두번째로 방문한 곳이다보니 처음과는 달리 놀라움은 많이 없었다. 그때도 건기에 방문했고, 이번에도 건기였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기때는 풍경이 많이 다르나고 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배낭족 시절 이곳에 왔을땐, 투어로 처음 만나고, 언어가 다른 나라의 친구들 여럿 모여 이곳에 왔는데. 이번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 그리고 문화적으로 영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웃과 함께 오니 뭔가 더 마음이 편하고 즐거웠다.
새벽부터 일정이 조금씩 딜레이가 되어서 굉장히 급하게 투어가 진행이 되었다. 우유니 내 각 포인트에서 여유있게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마치 과거 단체 투어관광상품의 여행처럼 움직였다. 투어회사에서 우유니 내에서 많은 곳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래도 지난번과는 달리 저녁까지 투어를 해서, 처음 왔을때와는 달리 여러곳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밤에 야경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시간이 많지 않아 담을수 없었던 것이 조금 아쉽다. 괜히 다음엔 우기때 다시와야지 다짐해본다.
우유니는 세계의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그러나 알려진바와 다르게 관광자원으로 많이 개발이 되지 않았다. 볼리비아의 경제가 좋지 않은 탓일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사람의 때가 타지 않아 이곳이 더욱 좋다.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면 이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을까. 사람의 이질적인 요소가 빠짐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신비를 오롯히 누릴수 있었다. 사람의 그 어떠한 창조물보다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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