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의 연속이다. 너무나도 멀다. 라파즈는 멀어도 너무 멀다.
애틀란타에서 마이애미, 마이애미에서 산타크루즈, 그리고 산타크루즈에서 라파즈.
두번의 환승 비행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혼자만의 여행도 아니고, 보내야 하는 수화물이 많아서인지 피로감이 금새 찾아왔다.
비행기나 공항에서 거리낌없이 잠을 자며 체력을 회복하던 배낭족 우꾼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불편한 좌석 및 밝은 공간에서 잠을 청하지 못하는 노동자 우꾼만 남아, 컨디션이 메롱이 되어갔다. 산타크루즈로 이동하는 비행기에서 잠을 잘 청하기 위해 멜라토닌을 먹고 기내에 탑승했지만 역시나 잠에 들지 못했다. 괜히 양옆에서 잠을 잘 청하는 동생들을 보며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채, 산타크루즈에 도착했다. 드디어 5년만에 볼리비아을 다시 찾았다. 산타크루즈는 고도가 낮고, 밀림지역에 가깝다 보니, 날씨가 후덥지근 했다. 공기조차도 뜨거웠다. 겨울이 다가오는 나라에서 여름이 다가오는 나라로 이동을 했기에 당연한 것이였겠지만,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고산에 위치해있는 라파즈였기에, 여름을 대비하는 옷차림은 아니였다. 나 역시 여러겹의 옷을 껴입어서 더운 날씨가 더 덥게 느껴졌다. 컨디션도 메롱일 뿐더러 더이상 더위를 버틸수 없어 자연스럽게 겉옷을 하나 벗어버렸다.
배낭족시절 볼리비아에 입국했을땐, 도착비자가 없었다. 그래서 인근국가인 칠레에서 비자를 사전에 발급받고 입국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볼리비아 도착비자가 가능해졌다.
비자를 받고, 출입국 심사를 받아야 하는 순리에 따라 비자발급 창구를 찾는데,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출입국 심사대에 가서 심사를 받는데 당연히도 비자를 요구했다. 상황 설명을 하고 비자발급을 원한다고 하니, 내 영어를 잘 못알아듣는 모양이다. 직원이 매니져와 이야기 한 끝에, 그 매니져는 나를 비자 창구로 안내했다. 자연스럽게 우리 일행들은 모두 비자 발급 창구로 이동하여 비자를 받고 다시 출입국 심사를 받았다.
볼리비아의 도착비자를 발급받는 것은 은근 까다롭다. 몇가지 서류들을 요청한다. 서류들을 사전에 인지하고 준비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사진을 사전에 준비하라고 했는데, 현장에서 사진을 찍곤 그 사진을 비자사진으로 활용했다.
비자를 받고, 출입국 심사대에 줄을 섰다. 여권을 살펴보니 배낭족시절 사용했던 'Stamp Here Plz'라고 적힌 라벨이 보였다. 옛 추억을 회상하면서 라벨을 비자 옆에 부착하고, 심사에 임했다. 출임국심사대 직원들이 이 라벨을 보곤 장난친다고 다음페이지에 찍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곳에 스탬프를 찍는 분들도 있었는데, 이번의 직원은 라벨을 보고 신기해하며 원하는 곳에 찍어줬다. 물론 직원이 출입국 도장을 잘못찍어 다시찍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별 큰 문제없이 출입국 심사를 하고 입국했다.
라파즈로 이동하는 항공편은 뭔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보통 최종 도시까지 이동하는 같은 항공사의 연결편은 수화물을 최종 목적지에서 찾는 방식을 택하는데, 이번의 항공편은 산타크루즈에서 수화물을 찾고 심사를 받은 뒤 다시 항공사 창구에서 수화물을 보내야 했다.
비자발급으로 일정이 지연이 되었고, 다음 연결편을 탑승하기엔 빠듯한 일정이였는데, 공항 직원이 우리들의 수화물을 보곤, 다음 항공편으로 이동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공항이나 항공사 직원이 이런것에 대해 먼저 제인하거나 문의하지 않는데 특히한 케이스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수화물 심사대. 수없이 여행을 다녀보았지만, 수화물 심사대에서 긴장을 하긴 처음이다. 아무래도 단기선교의 물품들이 뺏길수 있다는 우려에 괜히 그랬을지 모르겠다.
아니다 다를까 몇개의 수화물 가방을 확인해보곤, 심사대 직원들이 시비를 걸었다. 성도님들이 정성스래 준비해주신 단기팀을 위한 밑반찬들이 압수당할 위기에 처했다. 유통기한이 없는 음식물이라는 이유다. 그런 수화물들이 하나 둘 여러개 나오자. 직원은 살짝 당황한 기색이 보이면서 호기심을 보였다. 다행히 스패니시를 하는 한 자매의 기지로 직원들을 잘 설득해 밑반찬 뿐 아니라 빼앗긴 아이템 없이 잘 입국할 수 있었다. 이 모두 은혜다.
그렇게 수화물 심사를 무사히 빠져나왔고, 직원들이 우리의 수화물 가방들을 항공사 카운터까지 날라주었다. 이런 서비스를 해줄 의무가 없는데 해주는 것을 보니 아마 연결편에대해 자신들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 해준것 아닐까. 여튼 직원들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다시 수화물을 라파즈로 보냈다.
그리고 산타크루즈에서 라파즈로 이동. 변경된 항공편은 보딩시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딩을 할 생각이 없었다. 비행기가 출발하는 시간에 보딩을 하는 항공사들도 많이 있었어서 나는 그려려니 했지만, 그런 경험이 없던 단원들은 비행기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 한가득 노심초사 했다. 그것도 그럴것이, 게이트가 몇번 바뀌기도 했고, 아무래도 다들 잦은 비행으로 온 피곤함에 지쳐 조금은 예민해져 있었다.
여튼 다들 예민함과 피곤함을 안고, 라파즈로 이동했다. 산타크루즈에서 라파즈까지 비행시간은 한시간 남짓. 기장은 매우 스무스하게 착륙을 했고, 우리는 피곤함을 잊고 목적지에 도착함을 기뻐했다. 볼리비아 항공은 비행기는 정말 노후되었는데, 기장들도 배테랑들만 있나보다.
라파즈에 도착하니 숨쉬기가 조금 힘들어졌다. 살짝 몸을 움직여도 호흡이 금새 가팔아졌다. 마치 스쿠버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전에 라파즈를 방문할때는 고도가 낮은 곳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와서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공항이 위치한 곳은 엘 알토(EL ALTO)라는 곳인데, 라파즈보다 고도가 500m나 높은, 즉 4000m 고산지역이다. 아무래도 수목한계선 보다 높은 곳이다보니 나무들도 보이지 않았다. 초목만 있었다. 산소가 부족한 탓이다. 그땐 몰랐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왜 고산병으로 고생하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장시간 이동으로 인한 여독과 처음접하는 고산지대의 환경은 하나 둘 일행들을 힘들게 했다. 일부 단원들은 산소호흡기로 부족한 산소를 보충하기도 했다. 나 조차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고산병 증세를 느껴 조금 당황했다. 그러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체질이 그런것인지 이내 금새 적응했지만, 일행들은 그렇지 않았다.
선교사님들을 만나, 힘겹게 모든 짐을 이동하는 차량에 실고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을 했다. 다들 이동하는 내내 고산병으로 인해 두통이 생겨 고생했다. 나만 좀 멀쩡한 것 같아 조금 머쓱했다. 선교사님들은 라파즈 전경을 단원들에게 보여주고자 식당을 가던 중에 Mirador Virgen Blanca에 잠시 들렸다. 단원들은 피곤해하는 눈치였으나, 이내 라파즈 전경을 보곤 금새 표정들이 밝아졌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뿌뜻함이 함께 담겼으리라.
그리고 이동한 점심식사 장소 La Vaca. 장기간 이동과 고산병 증세로 피로감에 쩔어있는 우리에게는 단비같은 곳이였다. 뭐라도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식사를 하게된것이다. 이곳에서 주는 현지 음료 'Frut All'은 정말 꿀과 같았다. 볼리비아 국민음료라고 하는데, 솔직히 맛은 초등학교 앞에서 팔던 저렴한 음료수의 맛이긴 했다. 그러나 이 맛이 어린시절 즐겨마시던 음료 맛과 흡사해 추억보정이 되어서 그런지, 너무나도 긴 이동에 지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맛이났고 힘이 났다.
그리고 숙소로 들어왔다. 숙소는 정말 훌륭했다. 선교지에서 머무는 숙소치고는 정말 좋았다. 민망할 정도로 좋은 곳이다. 출장다니면서 많은 호텔들을 다녀봤고, 배낭족 시절 수많은 숙소들을 다녔지만, 이보다도 훌륭한 곳을 만날수 없었다고 할정도로 좋은 곳이다.
잠시 몸을 풀고, 앞으로의 일정들을 위해 공용물품들을 정리했다. 일부 단원들은 시장에 가 생필품들을 구입하러 이동했다.나 또한 시장가는 팀에 합류했다. 멀지않은 곳에 가게들이 있어 뭔가 정겨웠다. 미국은 마트를 가더래도 차를 이용하지 않고는 갈수가 없는데, 여기는 걸어서 갈수 있을 뿐 아니라, 흥정하는 즐거움도 있다. 한국에 돌아간 기분이다.
재미난 점은 구멍가게 같은 시장에 낯익은 물건들이 보였다. 멸치액젓, 라면 등 익숙한 제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인들이 이곳에 많이 사나 궁금했는데,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한인들보다 많이 살고 있고, 요즘 볼리비아 사람들이 K-pop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아시안 식품들이 많다고 한다. 희안하다.
피곤함을 뒤로한채 단원들은 선교지에 무사히 왔다는 기쁨과 준비한 행사물품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잘 도착했다는 놀라움과 은혜를 나눴다. 한 단원은 이전에 선교 때 입국시 행사물품들을 뺏겨, 계획했던 행사를 못해 모든 행사를 현지에서 다시 계획했다며 경험을 나눠주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정말 모든 물건들이 무사히 우리와 함께 들어와 준비한 행사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하다. 행사물건들을 뺏기고 다시 현지에서 무엇을 할까 기획을 할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저녁준비를 하며 선교사님 사모님과 이야기 할 기회가 생겼다. 공항에서 식당으로 이동하는 구간에서도 모든 대원들이 자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사모님과 이야기 하며 시간을 보냈어서 어려움은 없었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도중 묘한 이야기를 하셨다. 이번에 오는 단원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계셨는데, 특히 제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사역과 관련한 큰일로 사용하실 것’이란 마음을 주셨다고 이야기 하셨다.
그간 주변 지인들이 늘 비슷한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남의 삶이라고 쉽게 이야기 하네'하며 농담으로 받아쳤지만, 사모님과는 그 정도로 친분이 있지는 않아 애써 웃어 넘겼다. 왠지 모르게 이번의 사모님의 말은 계속 곱씹게 된다. 볼리비아 오기 전 이직을 준비할때도 무엇인가 기도 중에 찝찝함이 있어 양해를 구하고 이직제의를 거절한바 있는데, 기도해볼 문제다.
하나님. 그 삶을 떠난지 10년도 더 지났는데, 다시 그 삶을 살라뇨. 전 여전히 탕자입니다. 당신의 뜻보다 제 뜻이 강한 요나와 다를바 없답니다. 무엇을 제게 보여주시려고 이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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