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정말 생소한 단어다. '난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반갑기 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현실이다. 우리가 만나는 난민의 모습들이 TV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낯선 장면 뿐이였다. 그만큼 우리의 삶과는 상관이 없고 머나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로 치부했다.
그러나 2018년 500명이 넘는 예멘인들이 제주도로 입국, 난민신청을 하면서 '난민'문제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이슬람포비아, 테러와의 전쟁, 이 프레임에 갇혀 있다보니. 살기위해 찾아온 이들을 반기기 보다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이들을 맞이 했다. 심지어 청와대 국민 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난민 신청 허가·폐지' 청원이 올라왔고, 이 청원은 5일 만에 그 동의 수가 청와대 답변 필요 수인 20만명을 넘어선 22만 건을 돌파하며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당시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급증 하는 난민으로 국내 치안이 우려되는 것은 물론 무사증 제도와 난민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는 주장을 했고, 찬성하는 측에서는 우리나라가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국가인 만큼 인도주의 차원으로 우선해야 한다며 주장을 했다.
당시 많은 기독교인 역시 맹목적인 이슬람에 대한 공포와 테러를 일으킬 주범 그리고 이들이 암세포처럼 천천히 대한민국 사회를 무슬림화 시킬 것을 우려하며 예맨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했다. 그런데 정말로 난민이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일까. 맹목적인 두려움이 그들의 가치를 못알아보는 것을 아닐까.
지금으로 부터 100년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나라 없는 민족이였다. 지금 나라가 없어 이곳 저곳 떠돌아 다니는 쿠르드족과 다를 바 없었다. 1919년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세운이들은 누구일까. 그들 역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떠돌아다녔던 대한제국의 백성들이였다. 난민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전쟁이나 재난 따위를 당하여 곤경에 빠진 백성', '가난하여 생활이 어려운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난민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의미한다. 즉 그들 역시 '난민'이였다. 오늘날 난민의 개념과 정확하게 일치하다고 보긴 어렵겠지만 그들 역시 난민이다.
그렇다면 정말 오늘날 난민들이 테러를 일으키는 주범이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존재들일까.
그것에 대한 질문은 'NO'라고 "교회, 난민을 품다"라는 책에서 답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난민이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최근 이슬람 극단주의로 희생된 미국인보다 개에 물려 죽은 미국인들이 더 많음에도 무슬림 입국을 금지하자는 의견은 많은 반면, 개를 금자하라는 말은없다"고 꼬집었다. "9/11사태 이후 사고나 자살을 제외하고, 20만명의 미국인이 미국 내에서 살인으로 희생되었지만, 그 중 60명만이 이슬람 극진주의 테러리스트에게 살해당했다."
심지어 "이슬람 극단주의 영향을 받은 테러 중 70퍼센트는 '미국인'의 소행이였다. 이 중 대부분 미국 태생이며,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후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들도 많았다. 테러리스트 대부분 관광비자나, 학생비자로 입국한 뒤 테러를 일으켰다."며 "난민=테러리스트"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성경적인 근거들을 내세워 기독교인들이 난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난민은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난민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신앙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성경의 역사는 난민의 역사이기도 하다. 아브라함도 난민이었고, 야곱의 가족들도 난민으로서 애굽에 내려갔다. 심지어 예수님의 가족들도 현대적 난민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역시 난민이었다. 생명의 위협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 난민으로 살아가야 했다. 다윗은 어떤가? 사울의 추격을 피해 블레셋에서 망명하여 살아야 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본인이 난민이셨을 뿐 아니라, 우리가 난민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도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다."
이 책을 쓴 저자들은 월드릴리프 단체에서 활동하는 이들이다. 월드릴리프는 복음주의 단체다. 하지만 개종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들은 희망과 소망을 찾아온 이들에게 대답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이야기 하며 그들은 난민들을 환영하고 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여러 난민들의 삶의 스토리를 제시하면서 난민들이 우리 삶에 위협적인 존재가 아님을 재차 이야기 하고 있고 더불어 교회가 어떻게 난민을 도울 수 있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 나 역시 '난민'에 복합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난민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들이 우리 사회에 융화되지 못하고 테러를 일으킬 잠재적 범죄자가 아닌가'라는 흔하디 흔한 난민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뒤 난민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2018년 당시 예멘 난민들이 제주에 들어와 큰 이슈가 되었을 당시에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검색을 해보니 당시 제주로 들어와 난민을 신청한 484여명중 2명만이 난민 인정을 받았고, 412명이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았다. 나머지는 불인정 되거나 출국 등의 사유로 직권종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은 412명이 여전히 한국에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기사들을 찾아보니 "예멘 난민 1년…전원 체류 연장 결정"이란 기사를 발견했다.
내용을 보니, 난민 신청이후 인도적 체류로 인정한 412명 모두 1년더 한국에 체류할 수 있게 된것이다. 2018년 당시 가짜 난민, 범죄 가능성 등의 우려가 있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그런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고, 한국사회 일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책이 미국에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만큼,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겠지 라는 생각이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예멘 난민들이 한국사회에 탈없이 정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슬림 난민=테러리스트"라는 생각이 사라지게 되었다. 더불어 기독교인으로서 많이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정작 나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나만 사랑한 것이 아닌가 부끄러워진다.
한국사회는 미국과는 달리 여전히 난민에 대해 불편한 시각들이 많다. 돈을 벌기 위해 넘어오는 동남아 이민자, 자유를 찾아 떠나온 탈북민, 그리고 전쟁을 피해 넘어온 난민들 크게 보면 모두 난민이고 우리의 이웃이다. 난민을 위협적인 존재로 보재 않고 요셉의 파라오가 그랬듯, 우리도 그들의 가능성과 미래를 보아야 할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고, 그의 나라를 확장시킬 기회로 봐야 한다. 한국은 난민문제에 있어 걸음마 단계이다. 결과적으로 아시아 국가 처음으로 2012년에 난민법을 제정한 만큼 난민에 대해 더 포용적인 국가가 되길 희망해본다.
그나저나..정리가 되지 않은채 글을 끄적여서 기회가 되면 한번 더 책을 읽어보고 글을 정리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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